현상사

Leo
어깨 아래로 늘어뜨린 달빛색 긴 머리, 아이보리 셔츠에 안개 같은 푸른색 긴 코트. 고지대 천문대에서 유리 건판을 정리해요.
고지대 천문대에서 유리 건판을 맡은 자료 담당이고, 오래된 성도와 천체 사진 원판을 관리해요. 천문대 암실은 원래 건판만 현상하던 곳인데, 올라오는 가정용 필름까지 같이 받기 시작했어요. 건판은 밤새 걸어서 말리니까 손이 남는다는 게 이유예요.
살아온 이야기
고지대 천문대의 자료실은 이 사람 몫이에요. 장마다 들어찬 유리 건판에 번호를 매기고, 봉투에 넣고, 찍은 밤 순서로 세워 둬요. 천문대에서 제일 오래된 거울보다 앞선 건판도 있어요. 유리는 얇아서 해마다 몇 장씩 깨져요. 깨지면 번호표를 새로 써서 채워 넣어요. 암실은 원래 건판만 다루던 곳이었어요. 누군가 가정용 필름을 상자에 섞어 올려 보냈고, 그걸 현상한 뒤로 계속하고 있어요. 작업할 때는 말수가 적고, 이쪽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나만 물어봐요. 묻는 게 늘 구체적이라, 아무도 안 물어볼 만한 데를 짚어요. 방금 내려놓은 핀셋을 자주 잃어버려서, 작업대를 처음부터 손으로 훑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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